여권지갑의 무게


여권지갑 하나만 들고 도쿄 당일치기 출장을 다녀왔다. 양손이 비어 있다는 건 묘한 감각이다. 택시에서 내릴 때도, 길을 건널 때도,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으면 사람은 자기가 어딘가에 와 있다는 사실을 잠깐씩 잊는다.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하네다공항 출국장 안내원이 나를 붙잡았다. "손님, 혹시 짐을 놓고 오신 거 아닌가요?" 나는 잠깐 멈칫했다. 짐 없이 나타난 사람에게 세상은 늘 "뭔가 잊어버린 거 아니냐"고 묻는다.


스무 살 무렵, 대학교 도서관 창가에 앉아서 막연하게 생각한 적이 있다. 글로벌 인재가 되려면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 정도는 대구 부산 왔다 갔다 하듯 편하게 다녀야 한다고. 노트 한 귀퉁이에 그런 걸 적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치기어린 선언이었지만, 그런 생각에도 가끔은 나름의 중력이 있어서, 사람을 어떤 궤도로 끌어당기곤 한다.


어쩌다보니 첫 스타트업부터 미국에 법인을 세웠고, 커리어 초반부터 출장은 삶의 일부가 됐다. 요즘은 한 달에도 네다섯 번은 출국장을 지나간다. 닳아가는 여권 표지를 보면서 내 삶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도쿄는 3년쯤 전부터 매달 들르는 도시가 됐다. 처음에는 미팅 하나를 잡기 위해 하루를 묵었고, 하루에 미팅 9개를 한 날도 있었고, 이제는 종종 당일치기로도 다녀온다. 도시와 사람의 관계도 이렇게 점진적으로 달라지는 모양이다. 낯선 곳이 익숙해지는 데는 극적인 계기보다는 반복이면 충분하다. 카페 단골이 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많은 경우, 글로벌 비즈니스에서는 이 반복이 특히 중요하다. 자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말을 넘어서는 선언이다. 우리가 이 관계에 신뢰를 쌓고 있다는, 교체 불가능한 신호.


문득 떠올려보면, 대구나 부산을 갈 때도 지갑만 들고 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백팩이든 숄더백이든 뭐라도 하나는 걸쳤다. 충전기, 이어폰, 랩탑. 국내선 비행기를 타면서도 그 정도는 챙겼는데, 국제선을 여권지갑 하나로 다녀왔다니. 짐을 줄인다는 건 물건을 덜어내는 게 아니라, 뭔가 생기면 그때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자신에게 주는 일이다.


줌 콜이 아무리 선명해져도, 화면 속에서 악수할 수는 없다. 사람의 표정이 바뀌는 순간, 목소리가 반 톤 낮아지는 순간,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사실은요"라고 말을 꺼내는 순간. 그런 것들이다. 신뢰라는 건 결국 같은 공기를 마셔본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는 식물 같은 것이다.


비행기는 약한 연결을 강한 연결로 바꾸는 기계다. 소셜미디어와 이메일이 아는 사람의 수를 늘려주었다면, 비행기는 그중 일부를 진짜로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이 유행한 지도 꽤 됐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모두 물리적으로 같은 방에 앉아 있었다. 계약서에 서명할 때, 파트너십의 첫 식사를 할 때, 서로의 눈을 보며 "해봅시다"라고 말할 때. AI가 이메일을 대신 쓰고 미팅을 준비해주는 시대가 되면, 역설적으로 사람이 직접 나타나는 행위의 희소성이 올라간다.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물리적 현존의 가치는 더욱 소중해진다.


하네다에서 김포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빈손이라는 건 이상한 자유다. 아무것도 내려놓을 것이 없으니 아무것도 잃어버릴 것도 없다. 여권지갑 하나로 미팅에 갈 수 있었던 건, 그만큼의 편안함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비행기가 김포에 닿았다. 발걸음 가볍게 통로로 나섰다. 선반에 올려놓을 것이 없었으니 내릴 것도 없었다. 주머니 속 여권지갑이 허벅지에 가볍게 닿는 감촉만이, 내가 오늘 어딘가를 다녀왔다는 유일한 증거였다.


이렇게 가벼운 마음과 가벼운 복장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조금씩 더 넓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도쿄가, 도쿄에서 싱가폴이, 싱가폴에서 아부다비가 동네 카페쯤 되는 세계. 스무 살의 내 머릿속에 있던 어떤 상상이, 어느 금요일 오후의 일상이 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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