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카오야이 아트 포레스트(Khao Yai Art Forest)는 신비로운 장소였다. 숲 구석구석 많은 예술 작품들이 놓여 있고, 그 옆으로 미래 산업을 이야기하는 아시아의 많은 창업자와 투자자, 연구자가 모여 앉았다. CP그룹이 조성 중인 이 공간에서 열린 FOREST FORUM 2026은 보통의 컨퍼런스 같지 않았다.

모더레이터로부터 준비된 질문지가 있었고 나도 준비한 답변이 있었지만, 막상 시작되자 대화는 훨씬 느슨하고 즉흥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자연 속의 공기 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은 발표 대신, 평소 머릿속에만 넣어두었던 질문들을 조금 더 날것의 언어로 꺼내기 시작했다. 나도 준비한 대답보다 오래 품어온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됐다.

나는 AI가 존재 사이의 이해를 얼마나 바꿔놓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AI를 생산성의 기술로 이야기하는 데 익숙하다. 더 빨리 쓰고, 더 빨리 만들고, 더 빨리 분석하는 기술.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근본적인 변화 중 하나는 존재와 존재 사이의 이해 비용을 낮추는 일이다. 이런 워크숍에 모인 사람들도 각자 기껏해야 10분, 길어야 20분 정도 대화를 나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상대의 빙산의 일각만 볼 뿐이다. 서로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걸 느껴도, 그 사람의 생각 구조와 기억의 층위, 판단의 결까지는 거의 닿지 못한다.

이런 상상을 꺼냈다. 각자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개인 AI 에이전트와 함께 더 깊은 대화를 하는 미래. 누군가의 에이전트가 그 사람의 메모, 대화, 취향, 문제의식, 말버릇, 반복되는 질문을 오랫동안 읽고 축적하고 있다면, 우리는 단순히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이해 구조를 가진 채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네트워킹이 명함을 교환하는 수준이었다면, 그때의 만남은 서로의 정신 모델이 먼저 악수하는 일에 가깝지 않을까. 인간은 여전히 빙산의 일각만 보여주겠지만, 에이전트는 수면 아래 잠긴 덩어리의 형태를 조금 더 정확히 번역해줄 수 있을 것이다. AI의 단순히 임팩트는 인간을 대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영역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야기는 사람 바깥의 존재들로 뻗어나갔다. 요즘 나는 종종 키우는 강아지의 짖음을 녹음해서 프론티어 모델로 분석해보고 있다. 저 소리가 단순한 소음인지, 불안인지, 기대인지, 짜증인지. 아직은 실험에 가깝지만, 이런 시도가 쌓이면 머지않아 우리는 동물들의 신호를 훨씬 더 정교하게 해석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식물과의 대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나무와 풀은 신호를 주고받으며 환경과 서로를 감지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 언어를 읽지 못할 뿐이다. AI가 그 번역기가 된다면, 우리는 언젠가 숲과 대화하게 될지 모른다. 숲 한가운데 서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공기가 묘하게 다르게 다가왔다.

토론은 롱지비티에 대한 주제로 넘어갔다. 극단적으로 늘어난 수명이 상위 1퍼센트만의 특권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나왔고, 나는 오히려 반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며칠 전 트위터를 뜨겁게 달궜던, GitLab 창업자 시드 시브란디예가 의사조차 포기한 암을 GPT를 활용해 완치한 사례를 꺼냈다. 그는 골육종 앞에서 표준 치료와 임상시험 기회가 좁아지자, 진단 데이터를 최대한 끌어모으고 여러 치료 경로를 병렬적으로 검토하면서 자신의 케이스를 정밀의료 실험처럼 다뤄 완치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다. 병원 안에서만 내려오던 판단을, 데이터와 모델을 활용해 환자 스스로도 더 깊이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곧바로 의료의 민주화를 뜻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환자가 AI를 활용해 자기 질병의 가장 적극적인 연구자가 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현재의 LLM은 시드가 암을 치료하던 작년보다 비약적으로 강해졌고, 앞으로는 얼마나 더 향상될지 상상조차 어렵다.

역노화 메커니즘에 대한 보급도 비슷한 궤적을 탈 수 있다. 사람들은 롱지비티를 초부유층의 사치품처럼 상상하지만, 소프트웨어와 지식의 역사를 돌아보면 반대 방향이 더 자주 나타났다. 처음엔 비싸고 희귀하지만, 어느 순간 복제 비용이 급격히 떨어지고, 더 넓게 퍼지고, 결국 공공재적 표준이 된다.

지금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가장 역동적인 흐름의 상당 부분은 오픈소스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다. 오픈클로와 그를 둘러싼 흥미로운 서드파티 생태계의 앱들도, 중국의 프론티어 모델들 상당수도 오픈소스의 문법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 흐름을 보고 있으면, 롱지비티와 희귀병 치료, 심지어 역노화에 대한 치료법 역시 머지않아 오픈소스적 성격을 띠지 않을 이유도 없다.

누군가는 롱지비티를 상업적으로 독점하려 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혁명적으로 공개하려 할 것이다. 지식의 복제 비용이 낮아지는 방향성은 이미 너무 강하다. 소프트웨어 코드의 가격이 0원에 수렴하듯, 생명의 연장의 비밀도 영원히 소수만의 벽 안에 갇혀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공유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질문이 시작됐다. 모두가 더 오래 살게 되고, 많은 것이 풍요로워지면, 그 다음에는 무엇이 가장 가치있어질까.

나는 그중 하나가 오래 사랑할 수 있는 컨텐츠 세계관일 것이라고 말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건강하게 오래 살고, 더 많은 창작물이 더 빠르게 생산되는 세상일수록, 끝내 사람들을 붙잡는 것은 복제할 수 없는 애착이다. 복제 가능한 것은 넘쳐나겠지만, 세대를 건너가며 호출되는 상징은 오히려 더 비싸질 수 있다.

최근 240억원에 거래된 피카츄 일러스트레이터 카드의 예시를 꺼냈다. 포켓몬은 단순한 캐릭터 사업이 아니라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정서의 저장소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포켓몬 극장판을 보러 가는 장면은 흔한 풍경이다. 그건 하나의 세계관이 시간을 가로질러 두 세대의 감정을 동시에 묶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풍요 속에서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희소한 기술 그 자체만이 아니라, 희소한 애착을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있는 IP일 것이다. 카드 한 장, 캐릭터 하나, 세계관 하나가 단순한 굿즈를 넘어 시간과 세대를 묶는 자산이 되는 흐름. 해시드가 요즘 TCG 관련 펀드 설립 기회를 검토하는 것도 같은 맥락 위에 있다.

돌아보면 카오야이 숲에서 내가 공유한 이야기들은 전부 같은 질문을 향하고 있었다. AI는 존재들 사이의 번역기를 만들어낼 것이고, 롱지비티는 더 많은 사람에게 더 긴 시간을 건네줄 것이고, 오픈소스는 그 과실을 소수의 벽 밖으로 밀어낼 것이다. 그렇게 이해가 넓어지고, 시간이 길어지고, 많은 것이 풍요로워진 다음에도 끝내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때 가장 가치있어지는 것은 희귀한 기술이 아니라, 오래 이해받고 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일지 모른다.

숲이 정말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날이 온다면, 우리는 그제야 알게 될 것이다. 풍요의 끝에서 인간이 끝내 비싸게 매기는 것은 기능이 아니라 관계이고, 정보가 아니라 세계이며, 수명이 아니라 끝내 함께 남고 싶은 이야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