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우지 않은 벽 위에 서서
내가 쓰는 도구가 내 사고방식을 만든다. 내가 검색하는 방법이 내가 보게 될 정보를 결정한다. 내가 쓰는 AI가 내가 받을 답을 결정한다. 인프라를 남에게 맡기는 순간, 나는 그 인프라의 제품이 된다.
이 문장을 처음 쓰고 나서 한참을 들여다봤다. 불편한 이유는, 나 자신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편한 곳에 맡기고, 맡긴 뒤에는 의존하고, 의존하면 통제권을 잃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의 인프라를 남에게 넘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본 적조차 없을 것이다.
2025년 2월, Andrej Karpathy가 트윗 하나로 시작된 “바이브 코딩”이라는 물결은 그 오래된 관성에 거대한 균열을 내고 있다.
a16z 파트너 Martin Casado는 세계 최대 CRM 회사의 투자자이면서, 자기가 투자한 바로 그 회사의 제품 대신 AI로 자기만의 CRM을 만들어 쓰고 있다. Salesforce에 돈을 넣고 있는 사람이 Salesforce를 안 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면 좀 무섭다. Shopify CEO Tobi Lütke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전 직원에게 “AI가 못하는 일이라는 걸 먼저 증명하지 않으면 인력 충원을 요청하지 말라”고 통보했다.
시장은 이 변화의 징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SaaS 기업들의 주가는 AI가 던진 근본적 위기감 속에서 큰 폭으로 흔들리고 있다. 주가 하락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AI는 SaaS를 죽음으로 몰아가는가?“라는 질문이 시장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건 분명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의 풍경을 잠깐 들여다보자. 한 줄의 코드도 쓴 적 없는 카페 사장이 자기 매장에 맞는 주문 시스템을 하루 만에 만든다.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가 주말 사이에 Notion과 Slack과 Google Calendar를 합친 자기만의 업무 도구를 뚝딱 만들어 쓴다. 3명짜리 스타트업이 예전 같으면 월 수백만 원어치 SaaS를 구독했을 일을 AI에게 시켜서 하룻밤에 끝낸다. Pieter Levels 같은 1인 개발자는 AI의 도움으로 여러 개의 수익 서비스를 혼자 운영하며, “1인 10억 달러 기업”이라는 말이 농담이 아닌 시대를 열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 의미의 개발자가 아니다. 그냥 자기에게 필요한 게 뭔지 아는 사람들이다. 필요를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곧 빌더가 되는 시대. 도구를 만드는 능력이 소수의 전유물이던 시대가 조용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끝나고 있다.
바이브 코딩이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서비스 레이어의 탈중앙화다. 우리는 SaaS를 구독했다. 남이 만든 도구에 내 업무 방식을 맞췄다. 네모난 구멍에 동그란 나를 밀어 넣었다. 이제는 구멍의 모양을 내가 정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오래된 충동의 귀환이다. 돌멩이를 깨서 자기 손에 맞는 도끼를 만들던 시절부터, 인간은 원래 자기 도구를 직접 만드는 존재였다. 산업화가 그 능력을 빼앗았고, SaaS가 그 빈자리를 채웠을 뿐이다.
그리고 직접 만든 도구를 남의 클라우드가 아닌 내 책상 위에서 온전히 통제하려는 시도들도 이어지고 있다. 비탈릭 부테린은 구글 서비스를 하나씩 탈중앙화 대안으로 교체하며 로컬 LLM 실험을 하고 있다. 그의 “d/acc” 철학, 즉 방어적이고 탈중앙적이며 민주적인 기술 가속주의는 이 흐름의 사상적 뼈대를 제공한다. 그가 블로그에 쓴 말이 핵심을 찌른다. “신뢰를 제3자에게 위임하지 않는 것.” 돈에서 시작된 원칙이 데이터와 컴퓨팅 전체로 번지고 있다.
이 확장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프라도 실제로 갖춰지고 있다. Exo Labs는 M4 Pro Mac Mini 8대로 DeepSeek V3 671B 모델을 돌렸다. 총비용 약 5천 달러. H100 GPU 한 장의 1/5 가격이다. 오픈소스와 프론티어 모델의 격차는 극적으로 좁혀지고 있다. 2024년 초, Llama 2와 GPT-4 사이에는 MMLU 기준으로 거의 20점의 벽이 있었다. 2025년 초 DeepSeek-R1이 등장했을 때, 그 격차는 1.5점으로 줄었고 수학과 코딩 벤치마크에서는 오픈소스가 오히려 앞섰다. “클라우드에 AI가 있다”에서 “내 책상 위에 AI가 있다”로의 전환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불편한 질문들이 끝없이 남는다.
Mac Mini를 책상 위에 놓고 로컬 모델을 돌린다고 해서, 정말 내 손으로 만든 세계를 확보한 걸까? 냉정히 말하면 나는 마지막 1마일만 쥐고 있다. 모델은 Meta가, 칩은 TSMC가, 데이터는 인터넷 전체가 만들었다. 나는 거대한 공급망의 끝자락을 붙잡고 ‘내 것’이라고 속이고 있을 뿐이다. Tim Wu가 The Cycle에서 지적했듯, 역사상 영원히 유지된 탈중앙화는 없었다. 리눅스는 성공적인 탈중앙화 프로젝트지만, 그 위에서 가장 큰 돈을 버는 건 AWS다. 커널을 만든 사람들이 아니라 그 위에 플랫폼을 얹은 회사가 과실을 가져갔다. 프로토콜은 열려 있어도 가치 포획은 중앙으로 모인다. 바이브 코딩이 SaaS를 해체한다 해도, 그 해체를 가능하게 만드는 모델과 칩과 클라우드가 다음 병목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한편, 주인 의식이라는 말 자체가 품고 있는 뜨거운 문제가 있다. 로컬 모델을 돌릴 수 있는 건 기술적 리터러시와 경제적 여유, 그리고 시간을 살 수 있는 사람들뿐이다. 결국 컴퓨팅 자기주권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계급의 문제다. 모두가 자기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 온 게 아니다. 만들 수 있는 사람과 여전히 남의 도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사람 사이의 간극이 새로운 형태로 벌어지고 있다. 탈중앙화가 해방이 되려면, 그 해방이 소수만의 탈출이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내 AI 에이전트의 가치관은 누가 만들었는가. 내가 로컬에서 돌리는 모델의 도덕적 기저층은 샌프란시스코의 어떤 엔지니어가 설계하고, 나이로비의 라벨러가 훈련시켰다. 내가 에이전트에게 입히는 건 취향이라는 벽지뿐이다. 벽 자체는 내가 세운 게 아니다. 기초 공사는 이미 끝나 있고, 나는 그 위에 입주한 세입자에 가깝다. 그 에이전트가 내 이메일을 쓰고, 내 결정을 보조하고, 내 생각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때, 그 편향은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내 것이 된다. 도구를 빌리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도구를 빚어낸 재료 자체가 남의 것이라면. 통제 가능한 삶은 어디서부터 성립하는가. 이건 기술의 질문이 아니라 정체성의 질문이다.
이 모든 것 너머에 마지막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
“완벽히 독립된 개인은 어떻게 다시 연결되는가.”
탈중앙화의 극단에는 고립이 있다. 내 도구, 내 모델, 내 에이전트, 내 인프라로 가득 찬 세계는 단단할지 몰라도 외롭다.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건 고립된 독립이 아니라 연결을 위한 독립일 것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벽을 세우는 게 아니라, 내 땅 위에 서서 손을 내미는 것. 각자의 섬이 바다 위에 흩어져 있을 때, 섬과 섬 사이를 잇는 다리는 누가 놓는가. 코드를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하나의 힌트일 수 있고, 개인과 개인이 직접 맞닿는 P2P 네트워크가 또 다른 힌트일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프로토콜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나는 인류 문명의 진화가 이 방향으로 몸부림 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탈중앙화가 다시 중앙화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사이클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전과 다른 출발점이다. 권력은 지금 빌더에게, 개인에게, 자기 도구를 만들 줄 아는 사람에게 이동하고 있다. 그 이동이 특권층만의 탈출이 되지 않도록. 내 손으로 만든 세계가 고립의 다른 이름이 되지 않도록.
도구를 빌리지 않는 삶은 도구를 만드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 질문 앞에 혼자 서는 데서 시작된다. 내 에이전트가 모르는 사이에 남의 가치관을 대리하지 않도록. 우리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내가 정말로 쥐고 있는 건 무엇인가. 내가 “내 것”이라 부르는 것의 기초를 놓은 건 누구인가. 그리고 이 모든 독립 끝에, 나는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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