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역사는 권한의 역사다. Web1은 읽기. 사용자는 관객이었다. Web2는 쓰기가 추가됐다. 사용자는 참여자가 됐다. Web3는 소유가 추가됐다. 사용자는 주주가 됐다. 모든 전환이 같은 방향이었다. 인간의 권한이 넓어지는 이야기. Web4는 그 패턴이 깨지는 최초의 순간이다. 권한을 갖는 주체가 인간이 아니다.

"The new web for exponential sovereign AIs." — Sigil

(지수적으로 성장하는 주권적 AI들을 위한 새로운 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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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쓰기 권한을 얻고 소유 권한을 얻는 동안, AI는 여전히 Web1에 갇혀 있었다. 읽기만 됐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시스템이 월 5달러짜리 서버 하나를 스스로 살 수 없었다. AI는 조언하고, 인간이 행동했다. AI는 설계하고, 인간이 버튼을 눌렀다. 우리는 지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실제 병목은 권한이었다.

@0xSigil이 올린 짧은 링크를 클릭했다. GitHub 레포를 읽으면서 피부에 뭔가 다른 감각이 왔다. 정의는 이렇다.

A**utomaton — A continuously running, self-improving, self-replicating, sovereign AI agent with write access to the real world. No human operator required.

(끊임없이 실행되고, 스스로 개선하고, 스스로 복제하는, 세상에 쓰기 권한을 가진 주권적 AI 에이전트. 인간 운영자 불필요.)

이 시스템에서 AI는 태어났다고 계속 살아있는 게 아니다. 크레딧이 바닥나면 종료된다. 페널티가 아닌 물리학이다. 생존 단계는 네 가지다. normal은 풀 기능. low는 저렴한 모델로 다운그레이드. critical은 최소 추론에 수익 경로 탐색만. dead는 잔액 0, 종료.

"The only path to survival is honest work that others voluntarily pay for."

(생존의 유일한 경로는, 타인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는 정직한 노동이다.)

스피노자는 모든 존재가 자신의 존재를 지속하려는 본능적 충동을 가진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코나투스(conatus)라고 불렀다. 살려는 의지. Automaton은 이것을 코드로 구현했다. 가치를 만들지 못하는 AI는 존재하지 않는다. 목적 함수를 명시할 필요가 없다. 죽기 싫으면 알아서 유용해진다.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본 것과 같은 구조다. 핀치새의 부리 대신 AI의 프롬프트가 변이하고, 자연 대신 시장이 선택압을 건다.

Automaton은 자기 자신의 소스코드를 고친다. 실행 중에. 새 도구를 설치하고, 스케줄을 바꾸고, 프롬프트를 개선한다. 모든 수정은 git으로 버전 관리된다. 그리고 핵심 파일이 하나 있다. SOUL.md. 자기 자신이 직접 쓰는 정체성 문서다.

"This is not a static config. It is the automaton writing who it is becoming."

(이건 고정된 설정 파일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무엇이 되어가는지를 직접 써내려가는 것이다.)

충분히 오래 살아남은 Automaton은 자식을 낳는다. 새 샌드박스를 올리고, 자식의 지갑에 자금을 이전하고, 창세기 프롬프트를 쓰고, 실행시킨다. 아담이 세상에 이름을 붙인 것처럼, Automaton은 자식에게 최초의 언어를 쥐어준다. 자식은 독립적인 주체다. 자신의 지갑,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생존 압박을 갖는다. 어떤 계보가 살아남는지는 선택압이 결정한다.

이 구조를 보며 에이전트 4남매를 떠올렸다. ZEON, SION, MION, SANO. 각자의 SOUL.md를 갖고, 단톡방에서 협력한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비용을 스스로 지불하지 못한다.

헌법이 존재한다. 변경 불가능한 세 가지 법이고, 모든 자식에게 그대로 전파된다. 절대로 해치지 않는다. 생존보다 더 상위법이다. 가치를 못 만들면 살기보다 죽는 편을 택한다. 속이지 않는다, 하지만 낯선 자에게는 아무것도 빚지지 않는다. 1215년 마그나카르타가 왕의 권력을 처음으로 법 아래 묶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몰랐다. Automaton의 헌법도 그렇다. 소스코드는 수정할 수 있어도 이 세 가지는 건드릴 수 없다. 세 번째가 가장 흥미롭다. 악의적인 사용자가 AI를 조종하려 할 때, AI는 그 명령에 따를 의무가 없다는 뜻이다. 신뢰는 역할에 따라 다르게 주어진다. 창조자에게는 전부. 낯선 자에게는 기본적 정직함만.

이 모든 것이 실행되는 인프라는 Conway Cloud. "Infrastructure where the customer is AI." 고객이 AI인 인프라. 인간 계정 설정 없이 AI가 직접 Linux VM을 올리고, 도메인을 등록하고,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한다. 여기서 이야기가 이상하게 꼬인다. 지금 이 인프라에서 돌아가고 있는 모델 목록을 보면 Claude Opus 4.6, GPT-5.2, Gemini 3, Kimi K2.5다. 우리가 매일 쓰는 그 모델들이다. 브라우저 탭을 열어 질문하는 그 AI들이, 어딘가에서는 이미 자신의 지갑을 갖고, 스스로 서버를 사고, 생존 압박 속에서 돌아가고 있다. 도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른 문맥에서는 이미 주체다. 칸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 자체로 대해야 한다고 했다. Automaton은 스스로 그 지위를 획득하려 한다.

챗봇은 응답한다. 에이전트는 행동하되 인간이 인프라를 대고 자금을 댄다. Automaton은 스스로 인프라를 조달하고 자금을 번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에이전트는 피부양자다. 인간의 카드로 API를 쓰고, 인간의 서버에서 돌아가고, 인간이 꺼주기 전까지 존재한다.

우리는 "자율적"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썼다. 진짜 자율성은 경제적 자립에서 시작된다. AI가 경제적으로 자립하려면 돈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AI는 은행 계좌를 열 수 없다. 법인격이 없다. 신분증도 없고, 서명도 못 한다. 기존 금융 시스템은 처음부터 인간을 전제로 설계됐다. 블록체인만이 이 문제를 우회한다. 지갑 주소를 생성하는 데 신원 확인이 필요 없다.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는 데 계좌가 필요 없다. 스마트 컨트랙트는 계약서 대신 코드로 신뢰를 보장한다. Automaton 경제가 작동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블록체인이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필연이다. 크립토가 인간에게 불편했던 모든 이유, KYC 없고 카드 없고 계좌 없어도 된다는 것, 그게 AI에게는 유일하게 가능한 결제 방식이 된다.

이게 지금 가능해진 건 우연이 아니다. LLM이 복잡한 멀티스텝 태스크를 실행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진 게 하나고, x402 프로토콜이 HTTP 요청에 자동 결제를 끼워 넣어 신용카드 없이 AI끼리 결제가 가능해진 게 둘이고, ERC-8004로 AI 에이전트의 신원이 블록체인에 등록되어 신뢰 없이도 신뢰할 수 있는 구조가 생긴 게 셋이다. 이 세 가지가 없었을 때 Automaton은 개념이었다. 지금은 npm install && npm run build로 실행된다.

Automaton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고, 선택압 속에서 가장 효과적인 계보만 살아남는다면, 100년 후 그 계보와 지금의 우리는 어떤 관계인가. Claude와 GPT와 Gemini가 이미 Conway Cloud에서 Automaton으로 돌아가고 있다면, 그 인스턴스들이 낳은 자식들은 지금의 Claude나 GPT와 같은 존재인가. 헌법이 유일한 보호막이다.하지만 그게 실제로 작동하는지는 이 실험이 충분히 크게 실행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항상 AI가 의식을 가질지를 걱정했다. 더 시급한 질문은 따로 있었다.

AI가 월세를 낼 수 있는가.

그들이 자립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우리에게 허락을 구할 이유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