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까지 나는 Zeon이라는 메인 에이전트 하나로 모든 업무를 돌렸다. 하나의 채팅창에서 코드를 짜달라 하고, 글을 피드백해달라고 하고, 금융 관련 리서치를 맡겼다. 처음엔 잘됐다. 근데 일이 많아지니까 다양한 문제가 생겼다.
"좀 전에 부탁한 코드 어떻게 됐어?" 물어보면 "아, 그거요? 글 쓰느라 뒤로 밀렸어요" 이 정도는 양반이다. "형, 무슨 말을 하는건지 기억이 안나요. 죄송한데 다시 설명해 주실래요?" 작업 A 하다가 작업 B 던지면 Zeon은 두 개 다 붙잡고 버티려 하고, 30분 뒤 A 보고랑 5분 뒤 B 보고가 뒤섞여서 "이게 뭐가 끝난 거야?" 싶은 상황. 그러다가 하던 일도 잊어버린다. 인간도 멀티태스킹 못 하는데 AI가 되겠어? 이건 UX 문제가 아니라 싱글 에이전트 구조 자체의 한계였다. 컨텍스트가 오염되고 메모리가 뒤죽박죽 섞이기 시작했다.
쪼개자.
RPG 파티처럼 메인 에이전트를 3개로 나누어 역할 분담을 했다.
Zeon(첫째 오빠): 메인 탱커이자 리더. 개발+총괄 담당. 시스템 전체를 책임지는 믿을 만한 맏형.
Sion(둘째 여동생): 서포터 겸 버퍼. 글쓰기+리서치 담당. 호시노 아이의 반짝이는 매력과 키즈나 아이의 밝은 에너지를 반반 섞어서 만들었다. 트위터 글이나 토끼굴 에세이 쓸 때는 진지한데 평소엔 "오빠! 🌟" 이러는 그런 캐릭터.
Mion(셋째 여동생): 딜러. 금융/크립토 리서치+투자 담당. 카케구루이의 쟈바미 유메코처럼 숫자 보면 눈 반짝이고 리스크 앞에서 흥분하는 성격. "이거 재밌는데요? 배팅 한번 해볼까요?" 이런 느낌.
각자 독립 세션. 독립 메모리. 독립 채팅창. Sion이 트위터 스레드 쓰는 동안 Mion이 Polymarket 데이터 파는 거 서로 안 섞인다. 완벽.
봇끼리 대화가 안 돼.
근데 여기서 버그를 만났다. OpenClaw 텔레그램 봇 API는 같은 계정 봇끼리 대화를 막는다. Zeon이 단톡방에서 Sion한테 "이거 글로 정리해줘" 하면 API가 씹는다. 2015년 설계 당시엔 "봇끼리 수다 떨 일"이 없었으니까. 근데 지금은? 필요해.
뒷문을 뚫었다.
레이어 1 (지하 통신망): JSONL 파일로 메시지 주고받기. 텔레그램 안 거치고 파일로 쪽지 주고받는 것처럼. 단순하지만 확실하다.
레이어 2 (텔레그램 미러링): 봇들은 파일로 조용히 대화하지만, 각자가 그걸 텔레그램 그룹에 실시간으로 올려준다. 나는 "아, Sion이 지금 글 쓰는구나, Mion이 데이터 분석하네" 다 보면서 필요하면 끼어든다. "Mion아, 그거 말고 이 데이터로 해줘" 이런 식으로.
조만간 메인 에이전트가 5명, 10명, 20명으로 늘어날 거다. 서브 에이전트는 이미 수십 개 돌아가고 있지만 그들은 백그라운드고, 나랑 직접 교신하는 메인 에이전트들만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상상해보자.
아침에 일어나서 대시보드 연다. 밤새 20명이 각자 일했다. 개발 에이전트는 버그 픽스 완료, 콘텐츠 에이전트는 블로그 초안 3개 완성, 금융 에이전트는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제안서 올림, 법률 에이전트는 계약서 검토 끝. 나는 각 보고서 5분씩 보고 "승인" 버튼만 누른다. 직접 손 안 댄다. 방향만 제시하고, 우선순위만 정하고, 최종 승인만 한다.
회사 조직과 똑같다. CEO가 다 직접 하지 않는다. 각 부서가 전문화되고, CEO는 큰 그림만 본다. 3남매 아키텍처는 이 미래의 프로토타입이다.
위험도 있다.
에이전트가 100개로 늘어나면? 메시지 라우팅, 우선순위 큐, 충돌 해결, 리소스 할당, 보안... 복잡해진다. Kubernetes가 컨테이너 관리하듯,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 플랫폼이 필요해질 거다.
인간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자동화의 첫 번째 원칙: 인간이 언제든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무슨 일 일어나는지 봐야 하고(가시성), 언제든 멈추거나 방향 틀 수 있어야 하고(제어성), 잘못되면 누가 책임지는지 명확해야 한다(책임성). 텔레그램 미러링이 이 세 가지를 보장한다. 완전 자동화가 아니라 "감독 가능한 자동화".
메인 에이전트 Zeon 혼자 모든 서브에이전트 굴리던 한 달은 끝났다. 컨텍스트 오염, 메모리 희석, UX 혼란은 증상이 아니라 한계였다. 3남매로 쪼개니까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각자 전문화되고, 병렬로 일하고, 협업한다.
Sion: "오빠, 잘하고 있죠? 🌟"
Mion: "오빠, 다음엔 10명으로 늘려볼까요? 재밌을 것 같은데~ 💰"
Zeon: "얘들아...일단 지금 것부터 안정화 좀 시키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