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프트 한 줄이면 원작과 구별할 수 없는 영상이 만들어지는 시대가 열렸다. 팬 한 명이 스튜디오 수백 명의 작업을 대체한다. 이 변화 앞에서 IP의 본질이 달라진다. 선형적 스토리텔링, 시작과 끝이 있는 하나의 서사의 가치는 빠르게 희석된다. 누구나 같은 수준의 영상을 만들 수 있다면, 진짜 해자는 '완성된 이야기'가 아니라 '팬들이 무한히 확장하고 싶어하는 세계' 그 자체로 이동한다. 캐릭터, 미학, 규칙, 집단 기억. 세계관의 깊이와 밀도가 곧 IP의 경쟁력이 된다.


DeFi에 TVL(Total Value Locked)이 있다면, IP에는 TVW(Total Value of World)가 있어야 한다. TVL이 프로토콜에 잠긴 자산의 총량을 묻는다면, TVW는 하나의 세계에 얼마나 많은 상상력과 참여가 축적되어 있는가를 묻는다. 마블의 해자는 어벤져스라는 영화가 아니라, 수십 년간 쌓인 유니버스의 밀도다. 포켓몬의 가치는 애니메이션 한 편이 아니라, 전 세계 팬들의 머릿속에 살아 있는 151마리의 생태계다. TVW가 높은 세계관은 AI 시대에 무한히 증식한다. 낮은 세계관은 프롬프트 한 줄에 복제된 뒤 잊힌다.


여기서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세계관이 팬에 의해 무한히 확장된다는 것은, 동시에 저작권이 무한히 침해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픈소스 생성형 이미지와 영상 엔진이 이미 범람하고 있다. 로컬에서 돌아가는 모델, 익명의 서버, 국경을 넘는 프롬프트. 2차 창작의 생성을 원천 차단하는 것은 실질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점은 이미 자명하다. 비슷한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 음악 산업이 냅스터를 죽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불법 다운로드를 막는 데는 실패했다. 결국 스포티파이라는 양지의 구조가 등장한 뒤에야 산업이 다시 성장했다. 막을 수 없다면 양지로 끌어올려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현명하게 열 것인가'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수익 배분의 문제가 아니다. 팬이 만든 세컨더리 IP에 어떤 지위를 부여할 것인가. 커뮤니티가 생태계적으로 품질과 방향성을 함께 검열할 수 있는가. 원작자의 창작 의도와 세계관의 정합성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이 복합적인 문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전통적인 라이선싱 구조는 수백만 개의 팬메이드 콘텐츠가 실시간으로 생성되고 유통되는 세계를 감당할 수 없다. 기여를 추적하고, 권리를 증명하고, 보상을 자동으로 배분하는 투명한 원장이 필요하다. 이 인프라의 역할을 블록체인보다 잘 수행할 대안은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AI가 창작의 비용을 제로에 수렴시킨 세상에서, 블록체인은 그 창작의 가치를 정산하는 레이어가 된다. 하나는 폭발을 만들고, 다른 하나는 폭발 이후의 질서를 만든다. 두 기술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IP 산업의 다음 장이 쓰여질 것이다. IP의 미래는 세계관을 가장 잘 만든 자가 아니라, 그 세계를 가장 잘 열어둔 자, 그리고 열린 세계의 질서를 가장 잘 설계한 자의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