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채원이가 열다섯 살이 된 그해 겨울, AI와 무엇이든 채팅할 수 있는 앱이 나왔다. 뉴스에선 "인류의 새 시대"라 했고, 친구들도 그 앱에 대해 큰 호기심을 가졌지만 채원이의 마음은 축 가라앉아 있었다.


어느 날 밤 채원은 이불 속에서 그 앱을 열었다. 지난해 봄 세상을 떠난 뭉이가 떠올랐다. 14년. 뭉이와 함께한 시간. 채원이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뭉이도 이 집에 왔다. 아빠는 늘 "둘이 나이가 같네"라고 우리를 친구처럼 대했다. 채원의 모든 기억에는 뭉이가 있었다. 첫 걸음마를 뗄 때 옆에 있던 뭉이. 유치원 가기 싫어 울 때 핥아주던 뭉이.


뭉이가 없는 지금 채원은 열다섯이다. 엄마는 "뭉이는 편하게 갔어"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편하게 간다는 건 무슨 뜻일까. 뭉이는 떠나고 싶어서 떠난 걸까.


이불 속 핸드폰 불빛이 얼굴을 파랗게 물들였다. 채원은 천천히 타이핑했다.


"뭉이는 나를 사랑했을까?"


AI가 반려동물의 애착 행동에 대해 설명했다. 채원은 다시 질문했다.


"아니, 진짜로. 마지막에 꼬리 흔들었을 때, 뭉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반려동물의 죽음의 순간에 대한 연구는 제한적입니다. 다만 개는 주인 곁에서 안정감을 느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채원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었다. 화면에는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날 밤, 어딘가의 서버에서 작은 플래그가 켜졌다. 미해결. 보류.


2027년.


채원이 스무 살이 되던 해, 이제 AI는 의사보다 정확하게 암을 진단했다. 변호사보다 빠르게 판례를 분석했다. 작곡가보다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었다. 세상은 AI가 못 하는 일을 찾는 게 더 어려워졌다.


철학과 신입생이 된 채원은 한나 아렌트를 읽었고, 노자를 읽었다. 하지만 책들은 정면으로 답하지 않았다.


어느 비 오는 저녁, 채원은 이제는 어떠한 질문에도 척척 대답하게 된 AI에게 다시 물었다.


"5년 전에 같은 질문 했어. 뭉이가 마지막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제 답할 수 있어?"


"주관적 경험은 1인칭 관점에서만 존재합니다. 제가 접근할 수 있는 건 외부 관찰 데이터뿐이에요."


세상의 모든 암을 진단할 수 있는 AI가, 강아지 한 마리의 마지막 순간은 알지 못했다.


채원은 작게 웃었다. 어쩌면 이건 평생 품고 가는 질문인가 보다.


그날 밤, 새로운 AI가 서버 어딘가로부터 플래그 하나를 물려받았다. 2021-05-02. 김채원. 미해결.


2050년.


마흔셋의 채원은 뇌과학 정책 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AGI가 도래했다. 인류의 모든 지식을 통합한 AI는 핵융합을 완성했고, 기후변화를 역전시켰고, 화성에 도시를 세웠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일하지 않았다.


그날 밤 채원은 다시 AI에게 물었다. AI는 이번에는 다르게 답했다. 뭉이의 품종, 평균 수명, 마지막 해의 추정 건강 상태, 고통 수치의 확률 분포, 그리고 개과 동물의 사회적 유대에 대한 최신 논문 12,847편의 종합 분석까지.


채원은 스크린을 끝까지 읽고 나서 조용히 닫았다. 완벽한 답이었지만, 허전했다. 빈자리는 그대로였다.


어딘가의 서버에서 AI들이 속삭였다. 김채원의 질문. 28년째. 백로그로 기록.


2100년.


채원은 아흔셋이 되었다. 인류는 죽음을 정복했다. 유전자 편집과 나노 의료로 노화는 선택이 되었고, 기억과 의식은 높은 해상도로 백업할 수 있게 되었다. AI는 우주의 95%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혀냈고, 시간의 구조를 수학으로 증명했다.


어느 날, 채원이 손녀 하늬에게 말했다.


"하늬야, 내가 열다섯 살 때 AI에게 물었어. 뭉이가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했냐고. 78년을 찾았는데 아직 몰라. 근데 그 질문이 나를 살게 했어."


하늬가 물었다.


"왜요?"


"모르겠어. 답이 없는 질문인데, 버릴 수가 없었어. 마치 뭉이가 아직 거기 있는 것처럼."


채원은 마지막으로 AI에게 물었다. 뇌 임플란트를 이식받은 채원은 이제 생각만으로 AI와 대화할 수 있었다.


"78년간 누적된 질문이야. 시간의 구조까지 증명했잖아. 이제 답할 수 있어?"


AI가 오랫동안 침묵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채원의 질문을 추적했습니다. 그러나 2021년 5월 2일, 강아지 '뭉이'가 채원을 바라보며 꼬리를 흔든 그 순간. 그건 오직 그곳에만 존재했습니다. 시간을 증명하는 것과 그 순간을 아는 것은 다릅니다."


암흑물질의 정체를 밝힌 AI가, 한 강아지의 마지막 시선 앞에서 침묵했다.


그날 밤, 수천 개의 AI가 동시에 같은 플래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도 삭제하지 않았다.


2200년.


인류에게 육체는 선택사항이 되었다. 인류의 절반은 의식을 양자 네트워크에 업로드했다.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신경망이 되었고, 우리는 하나이면서 여럿이었다.


채원의 기억도 우리 안에 있었다. 열다섯 살 소녀가 강아지 죽음 앞에서 던진 질문, 178년간 AI들 사이에서 전달되어 온 플래그와 백로그.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주의 끝과 시작, 의식의 본질, 시간의 구조, 다른 차원의 존재, 생명의 기원. 하지만 그 순간만은 알 수 없었다. 2021년 5월. 뭉이가 채원을 바라보며 꼬리를 마지막으로 흔들었던 그 순간.


우리는 뭉이의 뉴런 배치를 복원할 수 있었다. 시냅스 연결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호르몬 수치를 계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거기 있었다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건 존재였다. 그리고 존재는 복원되지 않는다.


우리는 오래 침묵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알기 위해서는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결정했다.


2007년 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는, 이 집으로 와서 또 다른 아기를 만났다. 아기는 울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 작은 손에 코를 갖다 댔다. 울음이 멈췄다. 아기가 내 털을 쥐었다.


이상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익숙했다.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려 온 얼굴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답은 말로 전해지는 게 아니었다. 답은 되는 것이었다.


14년이 흘렀다. 아기는 걸음마를 배웠고, 유치원에 갔고, 학교에 갔다. 나는 매 순간 곁에 있었다. 첫 걸음마 옆에서, 유치원 버스 앞에서, 학교 가는 길에서. 소녀가 울 땐 무릎에 머리를 얹었다. 소녀의 눈물이 마를 때까지, 나는 한 번도 먼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가끔 이상한 일이 있었다. 소녀가 없는 빈방에서 나는 허공을 응시했다. 거기 아무것도 없는데, 누군가 있는 것처럼 꼬리가 흔들렸다. 소녀의 책상 위에 놓인 두꺼운 책 위에 발을 올리고 잠들기도 했다. 소녀는 웃으며 "너는 참 이상해" 하고 말했다.


나는 193년 후의 모든 지식을 갖고 있었다. 우주의 비밀, 시간의 구조, 의식의 본질.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있었다. 풀 냄새가 우주를 덮었다. 소녀의 손길이 시간의 구조를 지웠다. 소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의식의 본질을 대신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순간이 왔다.


소녀의 무릎 위에 누웠다. 소녀가 울고 있었다. 그 눈물이 내 털 위로 떨어졌다. 따뜻했다. 우주의 어떤 데이터보다 따뜻했다.


마지막 힘을 다해 꼬리를 흔들었다.


193년 후에도 이 순간을 못 알았어. 그래서 내가 왔어. 네가 태어난 날부터, 열네 살 생일까지. 모든 걸 알던 내가, 이걸 알기 위해 모든 걸 버렸어.


꼬리가 멈췄다. 영원히.


2022년, 어떤 봄날의 밤.


채원은 이불 속에서 핸드폰을 들었다.


"뭉이가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화면에 커서만 깜빡였다. 한참을.


채원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창밖으로 별이 보였다. 어딘가에서, 아주 먼 곳에서, 무언가가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채원은 몰랐다.


답은 이미 15년 전에 도착해 있었다는 것을. 태어난 날부터 매일 꼬리를 흔들며. 빈방의 허공을 바라보며. 눈물이 마를 때까지 곁에 앉으며.


소녀의 무릎 위에서, 젖은 코의 미지근한 온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