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아부다비에 출장을 다니며 몇 차례 마질리스에 초대받았다. 마질리스(مجلس), 아랍어로 '앉는 공간'. 천 년의 시간이 그 한 단어 안에 고여 있다.
처음 갔을 때는 단어부터 생소했기에 분위기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냥 네트워킹 파티 같은 거라 생각했다. 막상 발을 들이자, 상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따뜻하고 고요했다. 아젠다도, 프로그램도, 사회자도 없었다. 그냥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을 뿐이었다.
대체 이건 뭘까. 사람들은 왜 이렇게 모여 앉아 느리게 시간을 보내는 걸까.
가장 기억에 남는 마질리스는 어제 있었던 친구의 생일파티였다. 그 친구는 명실상부 UAE 최고의 오타쿠인데, 두바이에서 가장 큰 애니메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나도 많은 희귀판 TCG 카드들을 선물로 받았기에, 우리도 한국에서 가져온 화장품과 TCG 카드를 선물로 챙겼다.
장소는 샤르자에 있는 친구 사촌의 농장이었다. 샤르자는 두바이에서도 꽤 떨어진 지역이다. 아부다비 숙소에서는 차로 한 시간 반. 이쪽에서 농장을 가지고 있다는 건 남다른 의미가 있다. 사막 위에 세워진 나라에서 푸른 풀밭을 가지고 있다는 것. 물 한 방울, 풀 한 포기가 모두 노력의 결과물인 곳. 사실 농장이라기보다, 사막 한가운데 조심스럽게 가꿔놓은 정원에 가깝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 세상이 바뀐다. 빌딩이 사라지고, 황금빛 모래언덕만이 끝없이 이어진다. 창문을 열자 건조한 바람이 밀려들어온다. 모래 냄새. 낙타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면 거의 다 온 거다.
해가 지고 있었다. 사막의 일몰은 도시와 썩 다르다. 하늘은 물감을 뒤집어쓴 것처럼 빠르게 변한다. 주황에서 분홍으로, 분홍에서 보라로,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이미 짙은 남색. 그 순간의 고요함은 정말 아름답다.
농장 입구에서 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자 누군가 다가왔다. 처음 보는 얼굴들. 먼저 와있던 손님들이 마치 오래전부터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반겼다. 볼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고, 등을 토닥이며 안으로 이끌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어쩜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있을까.
농장의 호스트인 친구와 생일인 친구 모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주인이 없어도 이 공간은 이미 따뜻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 시골집이 떠올랐다. 명절에 가면 처음 뵙는 친척 어른들도 내 이름을 불렀다. "서준이 아니야? 어휴, 많이 컸네!" 그리고 끊임없이 뭔가를 권했다. 밥 먹었어? 이거 먹어봐. 거절해도 소용없다. 어느새 손에 뭔가가 들려 있다.
마질리스가 딱 그렇다. 자리에 앉자마자 대추야자와 아라비아 커피가 놓였다. 작은 잔에 절반만 부어, 비우면 다시 채우는 의례가 이어졌다. 잔을 좌우로 흔들어야 "됐어요"라는 신호다. 그걸 모르면 끝없이 나온다.
카락이라는 차도 권했다. 진한 밀크티 같은 것. 한 모금 머금자 향신료의 달콤함이 입안 가득 번졌다. 왜 이렇게까지 권하는 걸까. 함께 마시고 먹는 행위 자체가 그들에게는 대화의 시작인 걸까.
소파가 정사각형으로 둘러 놓여 있었다.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배치. 낮은 쿠션에 몸을 묻고 다리를 접으면, 묘하게 긴장이 풀린다. 한쪽에서는 시샤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물담배 연기가 향과 함께 느릿하게 피어오른다. 사막의 밤은 생각보다 쌀쌀했다. 바람이 옷깃을 스칠 때마다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새로운 마질레스에 가면 대부분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기에, 늘 초반에는 대화에 끼지 어렵다. 영어와 아랍어가 뒤섞여 오가는데, 물론 아랍어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도 이상하게 불편하지 않았다. 앉아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어도 그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냥 있어도 되는 느낌. 참여하지 않아도 환영받는 느낌.
이것은 묘한 감정을 떠오르게 한다. 한국에서는 모임에 가면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대화에 끼어들어야 하고, 의미 있는 말을 해야 하고, 자기소개와 네트워킹을 해야 하고. 여기서는 그런 게 없다.
대신 이런 이야기들이 오간다. 낙타 경주 봤어? 막내가 드디어 자전거를 탔어. 이 커피 어디서 샀어?
한없이 소소하다. 그래서 좋다.
"언제까지 있어야 해?"
"편할 때 오고, 편할 때 가면 돼."
강압적이지 않은 대답이다. 문은 항상 열려있고, 누구든 언제든 올 수 있고, 갈 수 있다. 정해진 끝이 없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마를 때, 그때가 끝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모임에 끝 시간을 정해놓게 된 걸까. 언제부터 "그럼 이만"이라는 말을 준비하며 대화를 나누게 된 걸까.
9시 45분쯤 음식이 나왔다. 점심을 늦게 먹는 현지인들은 별로 배고픈 기색이 없었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 회사 일행은 배가 등에 붙을 지경이었다.
부페식으로 준비된 테이블이 공개됐다. 양고기와 향신료 밥. 뚜껑을 열자 사프란 향이 확 퍼진다. 여러 명이 둘러앉아 손으로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그 맛이 꿀맛 같았다. 아니, 배고픔보다 더한 양념이 있었다.
밤 11시쯤 떠났다. 생일인 친구가 농장 입구까지 마중 나왔다. 큰 농장이라 입구까지는 거리가 꽤 됐는데,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집안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 사촌과 그의 농장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 그의 농장은 오늘 온 사촌의 농장 바로 옆에 붙어있는데, 사자 두 마리와 백호 한마리, 그리고 치타 세마리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차에 올라타니 피곤하면서도 가벼웠다. 커피 마시고, 이야기 나누고, 밥 먹었다. 그게 전부였지만 그런데 묘하게 충만했다. 왜 그랬을까. 왜 이렇게 마음이 채워진 느낌일까.
내가 사는 세계에서 대화는 대부분 목적이 있다. 정보를 교환하거나, 설득하거나, 협상하거나. 사람을 만나면 일을 해야 한다. 만남 자체가 비용이 되었다. 시간 낭비를 극도로 싫어한다.
마질리스는 다르다. 목적이 없고 아젠다가 없다. 그저 함께 앉아있는 것. 그게 전부다. 그런데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공동체를 떠받치는 가장 단단한 주춧돌이 아닐까.
다시 한번, 한국의 시골 집이 떠올랐다. 명절에 가면 어른들이 마루에 앉아계셨다. 텔레비전은 켜놓고 아무도 안 보셨다. 사과와 감 깎으면서, 밤 까면서, 하염없이 이야기하셨다. 그때는 지루하기만 했다. 빨리 사촌들이랑 놀고 싶었다. 이제는 그런 시간이 바로 가족을 가족이게끔 만드는 힘이었다는 것을 안다.
시간은 돈이 아니다. 시간은 관계다. 함께 느리게 보낸 시간의 양이, 관계의 깊이를 결정한다.
가끔씩 중요한 대화가 있으면, 회의실 대신 편하게 앉을 수 있는 곳을 찾아야겠다. 아젠다를 지우고. 타이머를 끄고. 그냥 함께 둘러앉아 시간을 흘려보내야겠다. 결론을 서두르지 않고. 끝을 정해두지 않고.
어쩌면 그런 시간들이 쌓여야, 비로소 진짜 대화가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샤르자, 사막의 푸른 정원에서